창세기 M 91

<야곱의 성숙의 표현>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들들을 책망하지 않았고, 야곱의 마음이 무감각해지고, 혼 생명이 온전히 죽은 바 되었고 나무와 같았으나, 그의 영은 소생되었다.

*요셉을 만나러 가기 전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다.

*요셉을 보았을 때 자신의 흐트러짐을 나타내는 흥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굽에 도착한 후 아무 것도 요구(구걸)하지 않았다.
구걸하고 요구하고 명령하는 것은 생명 안에서 어리다는 것을 증명한다.

*애굽에 사는 동안 자신을 위한 활동을 하지않았다.

*항상 사람들을 축복했다.
축복은 생명의 넘쳐 흐름이요! 생명 안에서 성숙한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넘쳐 흐름이다.
야곱의 생명이 성숙했다는 강한 표현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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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90

요셉이 팔렸을 때 17세 였으며, 야곱이 아들들을 곡식을 사러 애굽에 보낸 것까지는 이십 년이라는 긴 침묵의 시간이었다.

요셉을 잃은 것을 통하여, 이 모든 세월동안 야곱은 하나님을 향해 열린 항아리였으며 하늘에 속한 비가 계속 그의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침묵의 세월동안 하나님 자신이 더욱더 많이 야곱에게 분배된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야곱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되어 매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다.

그러나 야곱을 다루고 요셉을 높이기 위해 기근을 사용하셨다.
극심한 기근으로 사랑하는 막내 아들 베냐민도 형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야 했는데, 그는 홀로 남겨졌다.
이 어떠한 고통이었는가!
이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으심으로 이 항아리를 비우고 계셨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

요셉에 대한 좋은 소식이 왔을 때 야곱은 심히 비어져 있었으므로 그는 흥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하기까지 했다.
야곱은 변화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온전히 충만되어 있었다.
그는 성숙된 것이다!

야곱의 역사는 우리의 전기가 되어야 한다.
모든 환경들은 변화와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다.
오직 우리의 변화와 성숙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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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9

우리는 낮은 피조물들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분을 "표현" 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고 그분을 "대표"하도록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표현이요 대표이다.

창세기는 어떻게 야곱과 같은 사람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표현하고, 통치권으로 그분을 대표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지고 변화될 수 있는가하는 온전한 그림을 보여준다.

야곱이 바로왕 앞으로 인도되었을 때,, <안녕하시오? 어떻게 지내셨오? 연세가 몇이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를 축복하였다.
바로가 하나님의 표현인 사람 야곱 아래 있었음을 암시한다.

야곱은 라헬이 죽었을 때에도 울지 않았지만 요셉이 맹수에 삼킨 바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슬피 울고 심히 고통당하였다.

요셉을 향한 사랑의 치우침(편애)으로 인하여, 야곱은 성숙되기 위하여 그를 잃어야 했다.
야곱은 성숙할 수 있도록 이 좁은 지하도를 걸어야 했으며 전 생애에서 요셉을 잃은 것만큼 깊게 그를 만진 것은 없다.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 바뀌는 것이요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는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는 것이다.
오직 성숙한 생명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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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8

우리에게는 세 기둥, 세 이정표가 필요하다.
첫째: 갈르엣 즉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간증하는 기둥
둘째: 벧엘 즉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하나님의 집의 간증하는 기둥
셋째: 베들레햄으로 가는 길에 기둥 즉 우리의 천연적인 사랑과 원함과 선택이 묻혀진 곳인 라헬의 묘에 셋째 기둥의 이정표를 가져야 한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의 기둥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한다.

야곱은 세 개의 기둥을 세웠지만 에델 망대를 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가 편안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을 때 죄악된 일이 일어났다,

생활의 안일함은 항상 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유혹이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은 최종 목적지가 멀다고 생각하므로 쉴 곳을 찾기를 기대한다.
이 덫을 피하는 길은 멈추지 말고, 바라보지도 않는 것이다.

야곱의 일생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첫째 부분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하였다.
출생하던 날부터 그는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었다.
야곱이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었던 까닭에 라반이나 에서는 그를 해칠 수 없었다.

라반은 돌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라고 했지만(31:47), 야곱은 기둥을 세우고 그곳을 '갈르엣(증거의 무더기)'이라고 했다((31:37). 야곱은 그를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강한 간증으로 이 기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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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7

라헬은 야곱의 천연적인 선택을 대표한다.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베냐민을 출산하던중 죽었다.
야곱은 라헬을 잃었고 베냐민을 얻었다.
잃음 없이는 얻음이 있을 수 없고, 사망 없이는 출생이 있을 수 없다.
사망을 떠난 부활이 없으므로, 출생은 사망으로부터 온다.

우리 또한 천연적으로 사랑하는 것, 소원을 잃은 대가로 그리스도를 얻어야 한다.

성경은 라헬의 사망 후 야곱이 애통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야곱은 그 아내의 잃음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아래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낙담하는 대신 그는 즉시 그 아들의 이름을 "슬픔의 아들"에서 "오른손의 아들"로 바꾸고 크게 격려받았다.

야곱은 라헬의 즉음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알고 매우 강하였다.
이것은 21절에서 성령이 그를 이스라엘로 불렀다는 사실로 확증된다.
이것은 그가 온전히 변화되었음을 증명한다.

35장 끝에서, 우리는 온전히 변화되고 자유케 된 한 사람을 본다.
야곱은 이제 온전한 안식과 기쁨과 만족과 친밀감과 주님과의 교통 안에서 헤브론에 있다.

헤브론에서 야곱과 주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여기서 그는, 『우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찬송할 수 있다. 야곱 안에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께 다루심을 받고 온전히 그분으로 인해 조정된 한 사람을 본다. 모든 끈이 끊어졌으며 그는 헤브론에서 주님과의 친밀한 교통을 누릴 수 있도록 온전히 자유롭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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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6

<기둥이 되기 위해 온전케 되는 비결>

*자신의 관념들을 비울수록 온전케 되기가 쉽다.
의견이 많은 자들 가운데 한 사람도 온전케 되지 못하였다.
어떤 실수를 보았을 때에도 허비할 시간이 없으므로 잊어버리고, 단지 모든 적극적인 것들을 흡수하기를 갈망하는 자들은 온전케 된다.

*적극적인 것들을 주목할 때 많은 영양분을 얻고, 온전케 된다.

*성경은 항상 오직 한 흐름이 있어 왔다.
한 흐름을 발견한 후 우리는 과거의 지식과 관념과 이해와 관점들을 잊어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움직임을 위하여 유용한 기둥들로 완전케 될 수 있는 합당한 길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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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5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돌(건축)을 의미하는 "게바"로 바꾸셨다.

거듭남으로 우리는 변화의 씨로 뿌려진 신성한 생명을 영접했다.
영 안에 신성한 생명을 소유했지만,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를 새롭게 함으로 "변화"는 일어난다.

오직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 사람ㅡ매일 그리스도가 안으로 더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표현된 사람들!
이것이 경건의 비밀을 지탱하고 나타내는 기둥인 교회이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우리의 모든 관념과 의견을 내려놓아야 하며,주님의 말씀을 우리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표현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사실 그분의 이름을 배반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주님의 인격을 살아 나타내야 한다
이 인격의 이름이 "예수"시다.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그분이 우리 안에 터를 잡으실 수 있도록 우리의 관념들과 의견들을 내려놓고 그분을 우리 자신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명칭이 되시도록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살아 내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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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4

성경에는 쓸데없는 말이 하나도 없으며, 심오하며 그 안에 계시된 많은 것들이 비밀스럽다.

단 사람 어머니와 두로 사람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지만 우리는 거듭나서 또 다른 사람 "납달리" 사람이 되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아름다운 소리는 복음전파이며
그들은 생명의 말, 지혜의 말, 지식의 말, 건축의 말을 한다.

이 사슴은 전혀 속박을 모르고, 어떤 우리에도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로와 산꼭대기를 뛰어 다닌다.

모든 납달리 사람들은 비밀하다.
우리에게는 비밀한 근원과 근본이 있다.
우리 안에 비밀한 창시자(Originator) 를 모시고 있다.

우리는 단 사람 어머니와 두로 사람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납달리 지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비밀하다.
우리의 거듭난 생명 안에는 비밀한 요소가 있다.

우리가 얻은 세속적인 재능은 오직 부활 안에서, 세상의 아버지가 죽고 우리가 납달리 지파로 옮겨진 후에야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유용할 것이다.

납달리 사람 히람은 두로로부터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께로 인도되었다 (왕상 7:13-14).
솔로몬 왕은 그리스도의 예표요,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한다.

모세와 바울은 먼저 그들 스스로 기둥들이 되었고, 나중에 기둥 건축자들이 되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건축하였고, 바울은 디모데를 건축하였다(민 27:15-23, 딤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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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3

건축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언급된 희람(Hiram)은 어머니가 단 지파(길의 뱀이요,첩경의 독사)사람
아버지는 두로(무역이 풍성한 지금의 홍콩같은 곳)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히람이 납달리 지파인가? 그것은 비밀이다.

납달리는 사슴의 지파요 사슴은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꼭대기 위에 다니며, 교회생활을 위하여 부활 안에 사는 사람을 상징한다.
이 얼마나 멋진가!!

우리들도 거듭나고 변화되어 부활 안에서 "납달리"에 속했다.
놓인 사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 꼭대기로 다니며 교회생활을 위하여 부활 안에 살며, 생명과 은혜와 구원과 지식과 건축의 말씀을 발해야 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기둥의 건축자들일 것이다. 희람처럼!

우리의 두로 사람 아버지는 죽어야 하고, 단 사람 어머니는 과부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변화의 지파인 납달리 지파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배움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되, 우리의 배움을 세상의 일을 위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단이나 두로에 속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반드시 납달리에 속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기둥의 건축자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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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2

*기둥들에 관한 세가지 적극적인 방면: 놋, 백합, 석류들

*두가지 소극적인 방면: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 사슬 무늬로 땋은 것

그물 무늬로 얽힌 것은 십자가의 끝냄을 말하고,
사슬 무늬로 땋은 것은 제한을 말하는데 우리는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흘 동안 장사되어 있다가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나오는 것과 똑같다.

죽음 후에 부활이 오며,백합은 부활 안에서 우리를 자라게 한다.
기둥 머리를 에워싼 석류들은 생명의 부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둥 안에서 우리는 죽음과 부활의 생명의 표현을 본다.

우리는 매일매일 백합들을 자라게 하고 석류들을 표현하는 놋임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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