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M 81

성전의 두 기둥은 놋점장이 희람을 통하여 "놋"으로 만들어졌다.
놋은 항상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장막 입구의 제단은 놋으로 싸여 있었고,물두멍도 놋이요, 장대 위의 놋뱀 역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심판받으심을 증거한다.

두 기둥이 놋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기둥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심판 아래 있어야 한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는 한 푼어치의 가치도, 자격도 없습니다.
나는 오직 죽을 자격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심판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책임을 감당하고, 생명의 부요함을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집안에서 기둥이 될 수 있는 법을 본다.

우리는 심판 받은 놋이요, 살아 있는 백합화들이다. 놋은 "나는 죽고"를 의미하고 백합화는 "그리스도만"을 의미한다.

우리는 두 기둥의 이름이 야긴(저가 세우리라)과 보아스(그 안에 능력이 있다)임을 보았다(왕상 7:21).
두 기둥은 주님이 그분의 집을 세우시리라는 것과 참된 능력이 하나님의 집에 있음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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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80

창세기에는 두 기둥ㅡ돌기둥과 소금기둥이 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사도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기둥들이었다.

어떻게 기둥이 될 수 있는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의 장소
*야곱이 벧엘에서 기둥을 세운 곳
*솔로몬이 두 기둥을 세운 곳
*신약의 기둥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장소
*누구든지 기둥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장소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려면 롯의 처의 장소를 피해야 하며, 야곱의 위치, 솔로몬, 베드로 야고보 요한(세기둥), 빌라델비아의 위치를 취해야 한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우리의 의견을 내려놓고, 주님을 사랑하고,주님을 생명과 인격으로 취하며, 교회생활 안에서 그분으로 '인하여' 살라!
아무것도 모르고 매일 교회생활과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들도록 하라!
이렇게 할 때, 내가 믿건대 몇 년 후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둥들이 될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후, 의도적으로 두 기둥을 더하여 세웠다.
첫째 기둥은 야긴이고 (하나님이 세우리라),
둘째 기둥은 보아스 (그 안에 능력이 있다)였다. 우리는 오늘날의 야긴과 보아스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기둥이라면 그 지체가 없어질 때 무너지고, 그 지체가 참석할 때 지탱될 것이다. 주님은 기둥이 될 사람을 찾고 계신다.
기둥들은 오직 벧엘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

우리가 눈 딱 감고 매일 교회 생활과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다보면 몇 년 후 우리는 교회 안에 기둥들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집의 간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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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79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천연적인 힘이 소멸될 때까지 아이를 주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신뢰하지도 못함으로 천연적인 힘을 사용하여 이스마엘을 나았다.
하나님은 십 삼년간 말씀하지 않으셨다.
죄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천연적인 힘을 행사함으로 인해 언짢으셨다.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자가 천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보다 더 그분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
천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도울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천연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다.

오직 교회생활 안에서만,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ElㅡShaddai)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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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78

벧엘에서 제단을 쌓는 것은 교회생활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제단은 또한 도살(죽임)을 의미한다.
세겜의 제단은 개인적인 제단이지만 엘벧엘의 제단은 단체적인 제단이다.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보다 교회생활 안에서 단체적인 체험이 훨씬 더 풍성하고 달콤함을 간증할 수 있다.

교회생활은 변화하는 생활이다.
우리는 고침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고 있다.
교회는 전부 새 사람이며 교회생활은 변화된 이스라엘의 생활이다.

우리의 연대적인 나이는 점점 늙어가지만 우리의 존재는 점점 새로와진다.
나이든 모든 형제 자매들은 더 새로와지고, 더 민첩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신선해져야 한다.
교통할 때 젊은 사람들보다 더 목소리가 커야 하고,
더 빨라야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점점 새로와질 것이다.
이것이 벧엘에서의 체험이요 교회생활의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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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77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이제 더 이상 네 자신을 야곱(탈취자, 발뒤꿈치를 잡는자)이라 부르지 말라.
네가 야곱적인 방식으로 살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너는 이스라엘과 같이 살고 행하고 생활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왕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씨름꾼이다.
야곱아 너는 누구도 두려워 하지 말라.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다면 다른 누군들 못 이기겠느냐? 나는 네가 나와 씨름한다 하여 기분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나는 네게 "하나님과 씨름한 자(이스라엘)라는 이름"을 주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성질을 두려워 하는가?
"성질아! 너는 내가 하나님의 씨름꾼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스라엘이다"

당신의 성질에게 당신이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씨름꾼임을 말해줄 때, 성질이라는 그 작은 '빈대'는 사라질 것이다.

창 32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얍복강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셨지만, 그 때는 실재가 없었다.

35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벧엘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바뀐 것을 상기시키셨다.
즉 야곱의 생활방식에서 이스라엘의 생활방식으로 바꾸라고 요구하셨다.
이제 우리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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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76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끝난다.
우리 모두는 창조와 거처라는 이 두 단어에 깊이 인상받아야 한다.
성경의 완성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이다.

왜 사람들이 우상들을 숭배하는가?
본질적으로는 사탄의 유혹 때문이고, 인간적인 이유는 장수와 행복을 얻기 위해이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장수이시요 행복이시다.

35장 8절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고 말한다.
드보라는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의 유모였다. 드보라는 야곱에게 있어서 그의 어머니를 대신한 위로자였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오던 날 자동적으로 우리의 드보라는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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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75

그리스도는 기초석, 모퉁이돌, 머릿돌이시다.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일 즉 그분의 영원한 처소를 건축하고 계신다.
그분은 그밖의 어떤 것에도 관심하지 않으신다.
창조와 구원도 다 이 목적을 위한 것이다.

벧전2:4-5 주께로 오는 모든 자들이 영적인 집으로 함께 지어지는 "산 돌들"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다.
야곱의 일생의 모든 단계들도 벧엘과 연관되어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 벧엘은 확대되어 새 예루살렘에서 완성될 것이다.

요한복음 2장에서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그분이 장막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심을 계시하셨다(2:18-21).
그러므로 그분은 땅에 계실 때 장막이자 성전이셨다.
1장 51절에서 주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야곱이 꿈에 본 사다리를 말씀하셨다.
이 꿈의 실현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주 예수님 자신임을 계시하셨다.

고전 3장 11절에서 바울은 교회가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다고 말하며, 베드로는 주께로 오는 모든 자들이 영적인 집으로 함께 지어지는 산 돌들이라고 말한다(벧전 2:4-5). 이것이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다.

새 예루살렘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이 될 것이고, 하나님 자신과 어린 양이 거기에서 성전이 되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건축의 조감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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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74

하나님은 야곱에게 계획을 갖고 계셨으며, 우리 모든 사람에게 목적을 갖고 계신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땅 위에서 그분의 집인 벧엘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세겜이 야곱에게는 좋았지만 결코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야곱이 정착하고 만족하고 행복했을 때 이 불행한 사건이 그에게 발생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려움과 시련의 때에, 주님께 맹세하거나 헌신했음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헌신을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지 않으신다. 우리가 잊고 있을 때, 주님은 한 명의 딸, 열 한 명의 아들, 세겜, 하몰,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많은 믿는 이들이 야곱과같이 세겜에서 좋은 생활을 하며 벧엘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개인적인 세겜을 통과하여 벧엘, 즉 단체적인 교회 생활로 올라가기를 원하신다.
만약 우리가 단체적인 교회 생활에 이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목표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다.
세겜은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평강과 안정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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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73

주님은 야곱의 환도뼈(대퇴근)를 치셨다.
대퇴근은 우리 몸에서 가장 강한 근육이다.
주님의 의도는 야곱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천연적인 생명, 천연적인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위골되었고 절뚝거렸다.

야곱이 에서를 향해 걸어갈 때 그가 절뚝거린 것을 아는가?
주님에 의해 만져진 것은 외적인 생활이 아니라 내적인 천연적인 강함이었다.

야곱의 뒤를 따를 때 우리는 거듭거듭 만져질 것이다.
한번의 만져짐이 온갖 종류의 가르침들보다 낫다.
주님께서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을 만지시는 것이 백 개의 메세지보다 나은 것이다.

치심을 받은 후에 해가 야곱을 비추었다.
그는 빛으로 가득했다.
그는 하늘의 빛 비춤 아래 있었지만 절뚝거리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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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72

야곱은 진퇴양난이었다.
뒤에는 라반이 있었고 앞에는 에서가 있었다.
야곱의 평생에 처음으로 기도를 했다.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게 내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여기에서 야곱은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훌륭한 기도를 하였다.
그러한 놀라운 기도를 한 후에 안식해야 했지만, 야곱은 여전히 매우 바쁘게, 마치 뜨거운 후라이팬 위의 개미처럼 당황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라반이나 에서들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로서 그분의 약속을 갖고 있는 한, 다 괜찮다!

야곱은 결국 가나안 세겜 성에 이르러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장막을 치고 단을 쌓았다.
이제 그는 합당한 간증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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