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M-55

22장은 21장과 바로 이어진 장이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른 것을 언급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기 위해 오셨다.
사탄과 달리 하나님은 결코 어느 누구도 유혹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시험하신다.

결국 모리아 산은 좋은 땅의 중심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 산에 매년 세 번씩 하나님께 번제물을 드리기 위해 올라가야 했다(신 16 :16, 시 132:13).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선택한 장소로 가야 한다.

사냥꾼이며 활 쏘는 자인 이스마엘은 애굽 남쪽으로 가서 애굽 여자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번제물인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모리아로 올라갔다.
여기서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 활 쏘는 자와 번제물의 그림을 본다.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하는 로마서 4장 17절은 그가 믿은 하나님을『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두 가지에 대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본다.
그것은 부활의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이다.
이삭의 출생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과 관계 있었고 그를 돌려주신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과 관계 있었다.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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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54

창세기 21장에 따르면, 이삭의 출생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성장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삭이 자란 뒤에 이스마엘은 이삭을 조롱하기 시작했다(9절).
이것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는 의미이다. 이스마엘이 조롱한 것은 심각했다.
왜냐하면 이삭은 하나님이 정하신 씨였고 이스마엘은 모조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조품은 항상 정해진 자를 미워한다(갈 4:29).

이삭을 위한 우물(22-34절)은 복락의 강수이다(시36:8).
주님은 우리가 복락의 강수를 마시기 원하신다.
요 4장 14절에서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고 말씀하셨다.
계 22장 17절에서도 “그 영과 신부가 말씀하십니다. .... 원하는 사람은 다 생명수를 거저 받아 가십시오.“라고 하셨다. 이 신성한 우물이 우리의 삶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

창 21:33절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그곳에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한다.
21장에서 우리는 ’엘 오람(영원하신 하나님)‘을 본다.
17장에서 우리는 엘샤다이(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하나님)를 보았다.
아브라함은 비밀하고 신비로운 분인 하나님을 체험했다.
우리는 그분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다(시 90:2, 사 40:28).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머무르는 동안 여호와 엘오람을 부름으로써 살았고, 영원하고 숨겨진 하나님의 생명을 체험함으로써 살았다.
그는 우물의 풍성을 표현하는 흐르는 생명을 체험한 것이다.
우리는 에셀나무가 우리에 의해 체험된 생명나무임을 말할 수 있다.
이 나무는 생명나무의 표현이다.
이 나무는 여호와 엘오람이시다.

아브라함에게서 두 종류의 백성이 나왔다.
한 부류는 광야에서 살고 애굽과 연합한 이스마엘로 대표되고, 다른 한 부류는 브엘세바에서 살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던 이삭으로 대표된다.

오늘날에도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한 부류는 이스마엘같이 광야에서 살고 세상과 연합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 부류는 이삭과 같이 그들의 영 안에서, 교회 안에서 살고 시온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구원받았어도 자신을 위해 살고 세상과 연합하여 산다면 이스마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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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53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고, 그의 삶은 믿음의 삶이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던 놀라운 성도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통을 가진 후 일년도 안되어 헤브론을 떠나 남쪽으로 여행했다.
북쪽은 하나님의 임재와 고난이 있다.
남쪽에는 편안함은 있으나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옛창조 안에 있기 때문에 다시 타락하고 실패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위치를 고수함으로써 아비멜렉을 위해 중재기도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중재하는 것이 우리가 승리한 상태에 달려있지 않고, 우리의 위치에 달려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 새 피조물,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다른 사람을 위해 중재할 수 있는 위치를 우리에게 준다.
우리의 환경과 실패를 잊어버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남쪽으로 여행한 후, 지난 실패를 반복하여 그의 아내를 희생시키는 거짓말을 했다(20:2, 12:11-13 비교).
나는 사라를 보고 감탄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거짓말하는 데 불평하지 않고 동의했다.

예표론을 볼 때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을 나타내고 사라는 은혜를 나타낸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남편은 항상 믿음을 나타내고 아내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고 그의 삶은 믿음의 삶이었다.
사라가 하나님의 은혜를 예표하기 때문에, 그녀에게서 난 이삭은 그가 은혜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주권적인 돌보심으로 그를 보호하셨다(3절-7절, 14절-16절).
18장과 19장에서, 하나님은 롯에게 나타나시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여기 20장에서,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아비멜렉의 꿈 속에 나타나셨다(3절).
이 점에서 볼 때, 20장에서의 아브라함의 위치는 19장에서의 롯의 위치와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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