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M 89

우리는 낮은 피조물들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분을 "표현" 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고 그분을 "대표"하도록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표현이요 대표이다.

창세기는 어떻게 야곱과 같은 사람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표현하고, 통치권으로 그분을 대표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지고 변화될 수 있는가하는 온전한 그림을 보여준다.

야곱이 바로왕 앞으로 인도되었을 때,, <안녕하시오? 어떻게 지내셨오? 연세가 몇이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를 축복하였다.
바로가 하나님의 표현인 사람 야곱 아래 있었음을 암시한다.

야곱은 라헬이 죽었을 때에도 울지 않았지만 요셉이 맹수에 삼킨 바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슬피 울고 심히 고통당하였다.

요셉을 향한 사랑의 치우침(편애)으로 인하여, 야곱은 성숙되기 위하여 그를 잃어야 했다.
야곱은 성숙할 수 있도록 이 좁은 지하도를 걸어야 했으며 전 생애에서 요셉을 잃은 것만큼 깊게 그를 만진 것은 없다.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 바뀌는 것이요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는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는 것이다.
오직 성숙한 생명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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