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M 52

"네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창 3:17)
사람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수고해야 하기 때문에 염려로 가득하다.

우리에게 근심을 일으키는 환경들을 정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느니라"(롬 8:28)
모든 것들 안에는 틀림없이 고통들과 근심들과 걱정들이 포함된다.

근심이 인간생활의 총체인 것처럼, 관용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총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데 이르게 되었다.

근심은 관용하는 우리의 능력을 먹어 치우는 벌레와 같다.
근심으로부터 해방된 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모든 환경들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돈을 벌거나, 잃어버리거나, 병들었거나, 건강하거나, 모든 환경은 아버지의 정하심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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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51

관용은 충만한, 광대한이라는 의미이며, 또한 성숙과 만족과 자족을 요구한다.
관용은 또한 주 안에서 기뻐함과 관계 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그 후 바울은 바로"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4:5)고 말한다.

만일 관용을 알게 하려면 우리는 기뻐해야 하며, 주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슬프거나 비통한 사람들은 관용을 가질 수 없고, 쉽게 화내고 불평하고 성질을 내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관용은 기뻐함의 산물이요 결과이며, 기뻐함과 관용은 함께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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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50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초점은 관용이다.
관용은 평강과, 온유와, 사려깊고, 합리적이고, 적합하며, 온화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평화롭고, 다른이들을 향한 동정이 충만할 것이다.

관용의 반대는 매우 엄격한 방법으로 공정한 것이다.

관용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음으로 만족한 것을 의미하며, 엄격하고 합법적인 권리에 따라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의 총체를 요약해서 말한 가장 좋은 단어는 관용이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사람도 합당한 숙고하심이 없이 징계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종종 징계하시기 전에 긴 시간을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분명히 관용하시고, 이해와 지혜와 인내와 사려 깊으심과 동정과 긍휼과 친절과 사랑과 생명 공급이 충만하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광야에서의 노정에서 하나님의 다루심은 얼마나 관용하셨는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관용이 충만하신 지혜로우신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를 다루셨다.

인간의 생명에서나 영적인 생명에서나 모두 성장이 요구된다.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할수록 더욱더 관용을 갖게된다.

우리는 성숙의 정도에 따라 주님의 생명의 만족을 누린다.
만족과 흡족함을 앎으로써 우리는 관용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관용으로 충만할 때, 염려로부터 해방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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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9

<관용>
관용은 인내, 겸손, 자기 통제, 온건, 친절, 온화함, 또한 결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소극적인 태도와 불친절한 말 등 때때로 보기 흉하게 처신하는 이유는 관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용이 부족하여 편협할 수 있고, 심지어 말이 많음도 관용이 없는 결과일 것이며, 만일 관용이 없다면, 우리는 평강이 없을 것이다.
평강은 관용으로부터 온다.
좋은 남편이나 아내가 되는 열쇠는 관용이다.

관용은 사실상 그리스도 자신이다.
오직! 뛰어난 부활 안에 있는 생명만이 관용의 생명일 수 있다.
관용은 사실상 뛰어난 부활 안에, 즉 옛 창조 대신 새 창조 안에 있는 생활의 표현이다.

단지 친절하거나 참을성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관용을 통하여 표현된 뛰어난 부활이신 그리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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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8

천연적인 생명의 한 가지 성격은 근심하는 것이다.
당신은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최근에 건강에 어떤 문제로 나는 근심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4-7)
나는 이 약속 위에 서서 선포한 직후에도 나는 다시 근심했고, 근심은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뛰어난 부활 안에는 근심이 없다.

"누구든지 온전히 자란 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질지니"(3:15)
이러한 생각의 의미는 상을 위해 목표를 향하여 좇아가려고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뛰어난 부활의 목표를 향하여 추구하는 것은 옛 창조에서 나와서 전적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뛰어난 부활은 사실상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이며, 사랑스럽고 보배롭고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인격이시다.

우리의 온 생애가 뛰어난 부활 안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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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7

바울은 뛰어난 부활의 목표를 향하여 추구했다.
바울이 사용한 '뛰어난 부활'이라는 용어는
옛 창조로부터 새 창조 안으로 들어가는 부활을 가리킨다.

우리는 교회 생활이나 가정 생활에서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음으로, 그의 부활 능력을 체험하고, 그의 고난의 교통 안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뛰어난 부활에 이르며, 옛 창조에서 완전히 나와서 새 창조 안으로 완전히 부활되는 목표에 도달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시는가?
한편으로 하늘에 계시며, 다른 한 편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또한 부활 안에 계신다.

그 영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제, 즉 뛰어난 부활의 실제임을 보았다.
그 영은 우리 존재 안으로 뛰어난 부활을 참되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역사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고 계신다.

뛰어난 부활 안에는 옛 창조의 요소가 없으며, 신성한 요소가 충만하다.
이것이 뛰어난 부활 안에 사는 사람들 (생활과 행동과 말)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을 느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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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6

거룩한 계시의 심장부인 네 책들 즉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는
무진장한 광산과 같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려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3:10)
이 한 구절에서 네 개의 다이아몬드를 본다.
그(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부활의 능력 고난의 교통 죽음을 본받는 것
이 풍성들은 얼마나 놀라운지!

바울은 고난을 변화와 본받음으로 말한다.
이 본받음은 변화의 결과이다.
모든 것들은 우리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우리의 선을 위하여 협력한다.
의심할 바 없이 이 과정은 고난, 즉 우리를 성숙한 아들들이 되도록 돕는 고난을 포함한다.

우리가 이런 종류의 고난을 통과할 때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몸을 인하여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부활 능력을 더 많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의 실제는 그 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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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5

주님은 어느날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하시려고 그의 눈을 여셨다.
그때로부터 바울은 율법의 지식의 탁월함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탁월함으로 돌이켰다.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본 후에 바울은 기꺼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종교와 문화 또한 배설물로 여겼다.

그 영의 공급과 생명의 말씀과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 주입된다.
그럴 때 이 주입된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로 우리에게서 사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부른다.

바울은 절대적으로 그의 일상 생활로 하나님을 살아 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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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4

말씀과 믿음과 그 영은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영이요 말씀이다.

말씀의 첫번째 기능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입한다.
말씀이 체험에서 그 영이 되는 것은 성냥불에 비유할 수 있다.
성냥의 머리는 인으로 공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합당한 방법으로 성냥을 켤 때 인은 불꽃으로 타오른다.
불꽃과 인은 다른가?
아니다, 그것은 인의 폭발이다.
같은 방법으로 그 영은 말씀의 폭발이다. 우리가 이 폭발을 체험할 때, 우리는 그 불꽃에 의해 불타오른다.
이 불타오름이 믿음이다.

말씀과 그 영을 떠나서 우리가 믿음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얻음과 누림과 체험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다.
그럴 때, 사역하는 사람은 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기쁠 것이며, 동시에 자신을 관제로 그 위에 붓게 될 것이다.

믿는이들 자체가 제물이 아니라
믿는이들의 믿음이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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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43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모방하라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분을 따르고 닮으려고 할수록, 더욱더 나의 타락한 본성이 드러났다.
어찌 타락한 인간이요 심지어 합당한 인성조차 결핍되고 신성한 요소가 전혀 없는 자인 내가 이 하나님-사람을 따를 수 있단 말인가?

빌립보서 2장에서 주 예수를 따르려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점차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것을 깨달았을 때, 뛸듯이 기뻤다.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이제 하나님-사람이다.

-세상에서 빛들로 빛남
빛들은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발광체를 암시한다.
우리는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참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빛들이 되었다.

우리가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내적 역사에 동역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빛과 함께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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