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M 61

관용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염려는 사탄으로부터 온다.

욥은 의로왔고 자신 안에서는 완전했지만 참되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욥은 부서져야 했고 철저히 처리되어야 했다.

바울은 이상과 계시를 받은 것이 탁월함으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

욥과 바울의 경우 사탄이 괴롭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의 원칙은 동일하다.
그러나 모든 환난과 재난과 재해는 사탄에게 허락하신 것이지만, 염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것이 아니다. 환난이 오자마자 사탄은 염려를 일으키러 온다.
사탄에 의해 일으켜진 염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관용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교리가 아닌 매일매일 은혜로 관용하는 삶을 살아 그리스도를 확대할 때 염려, 근심은 우리를 만질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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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6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들> 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느니라"
이 <모든 것들> 안에는 틀림없이 고통들과 근심들과 걱정들이 포함된다.

사람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고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 생활에서 염려(근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관용과 근심은 공존할 수 없다.
근심은 관용하는 우리의 능력을 먹어 치우는 벌레와 같다.

근심을 갖지 않기 위한 선행 조건은?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들(물질, 건강등등)이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우리에게 온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때때로 주님은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우리의 운명을 성취하도록 돕는, 어려움들과 고통들을 보내신다.

모든 환경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근심을 갖지 않는 방법이다.

합당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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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M 59

관용은 성숙과 만족과 자족을 요구한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말한 후에 바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관용케 되려면 기뻐해야 하며, 주 안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슬프거나 비통한 사람은 쉽게 화내고 불평하고 성질을 내게 되므로 관용을 가질 수 없다.

관용은 기뻐함의 산물이요 결과이다.

또한 관용은 기도를 요구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충만하고, 합리적이고, 긍휼히 여기고, 친절하며, 동정적이며, 사려깊음,으로 관용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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