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그리스도인의 체험)

물질 세계가 창조된 순서와 개인의 영성이 새롭게 되는 체험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 실행 안에서 원래 서로 표면과 이면을 이루는 것이다.
창조의 역사는 바로 우리의 생명이 새창조
안에서 체험하는 노정을 예표한다.

첫 단계의 역사는그분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심으로 말미암는다.
타락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 역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다.

물질적인 창조는 영적인 생명의 창조의 예표이다.
여섯 째 날의 후반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다.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히고 함께 부활하고 열매맺고 승천등 생명을 표현하는 여러 노정을 거친 후,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단계인 "너희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믿는 이들의 영적 목표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체험에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 곧 하나님을 따라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형상인 속성들을 우리 미덕을 통해 표현할 때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이끌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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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일간의 대기의 회복)

모세는 하나님이 먼저 빛을 부르셨고 그런 다음에 낮과 밤을 나누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결코 빛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빛을 불러내셨을 뿐이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만약 첫째 날 이전에 빛이 없었다면 낮과 밤은 의미가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셋 째날 나무와 풀과 채소를
그 종류대로, 다섯 째날 새와 물고기를 그 종류대로, 여섯 째날 육축과 곤충과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섰다.

그러므로 풀이 나무가 되었다거나,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진화론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만드셨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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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세상과 그 황폐함의 원인)

에스겔 28장에서 첫번째 창조의 주인공인 천사장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이사야 14장은 배역의 목적이 하나님의 위치에 서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천사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사탄이 되었다.
사탄은 대적자입니다.

우리는 마귀에 대해 더욱 깊은 원한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몇 천 년 동안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가지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이 그분과 연합하여 사탄의 왕국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우리들은 유일한 ‘하나님- 사람’이신 주 예수님과 협력하여 세상에서 마귀의 모든 행위를 막고 대적해야 한다(벧전 5:9,고후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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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지질학)

(창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1:2) 땅이 황폐하고 공허하게 되었으며 어둠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을 품고 계셨다.
(창1:3)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생기라 그러자 빛이 생겼다.

창1:1의 원초 창조와 창1:3의 재창조(만드심) 사이에 창1:2의 어떤 반역이 홍수로 온 땅이 물로 심판받은 그 기간은 성경에서 말하지 않아 몇 만 년인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질학에서 말하는 것을 맞다라고 할 수는 없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지질학은 사람의 발명품이다.
우리가 창세기를 지질학과 나란히 놓을 때 우리는 창세기를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의 뒤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에는 창조의 행위에 대하여 세 가지 단어가 있다.
1.바라―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2. 아사(Asah)―있는 재료에서 뭔가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육 일간 의 역사를 기술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된다.
3. 야차르(Yatsar)―완성한다는 의미로서 토기장이가 한 덩어리의 진흙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서 43장 7절은 이 세 단어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무릇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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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그 사자)

우리는 사탄이 이미 패배한 원수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더 이상 패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유혹이 올 때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는 승리하셨고, 사탄은 패배했습니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어린양의 피와 우리 입의 증거하는 말로 마귀 참소를 이겨야 한다(계 12:11). 우리가 참으로 십자가의 승리를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할 것이다.

복음전파는 세상적인 말과 지혜의 탁월함으로 전파하는것은 십자가의 영과 반대된 것이며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다.

바울은 천연적인 재능을 버리고 십자가의 영과 태도로 십자가를 선포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크게 사용하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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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자)

바울은 십자가를 전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십자가를 산 사람이고, 그가 전한 십자가는 그 살았던 십자가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 할뿐 아니라 또한 내가 못 박혔다고 말 할수 있었다.
온유함 인내 약함 눈물 고난 감옥 생활 등은 모두 십자가의 생명의 표현이었다.
자신이 십자가의 생명을 소유 했으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이 십자가를 재생할 수 있었다.

우리가 전한 십자가를 통해 사람들이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십자가의 체험을 갖지 못해 십자가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며, 십자가의 영을 사용하여 십자가의 말씀을 전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한 그 십자가에 우리가 못 박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하기 원하는 그 생명을 우리가 먼저 얻을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가 날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십자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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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우리는 자아에 대해 죽는 것은, 죄에 대해 죽는 것보다 더 깊고 진보된 것이다.

죄를 이긴 뒤에 믿는 이들에게 즉각적으로 당면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자아를 이기는가이다.

자아를 부인함은 매일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아를 부인하는 이 문제는 영 단번에 성취 될 수없다.

" 나(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힘은 자아의 근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십시오 "

그러므로 세 단계의 순종이 필요하다.
1) 자아를 거절하고 버리고 무시하고 요구를 인식하지 않아야 함
2) 매일매 순간 십자가를 지는것
3) 주님을 따르는 것
우리가 이것들을 함께 생각하고 실행 한다면 승리하는 체험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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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롬6:8).
우리의 엣 사람은 죄의 몸이 효력을 상실하여 우리가 더이상 죄에게 종 노릇 하지않도록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롬6:6).
우리는 스스 로 못박힐 수 없고 또한 그렇 게 하여 죽지 않는다.
이러한 연합의 죽음은 이미 성취뒨 사실이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성취 되었다.

우리가 그분의 죽음 안에서 주님과 연결되지 않았다면,우리의 자아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우리의 구주 이실 뿐 아니라 자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자아에 대하여 죽는 것은 우리의 영적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은 죄의 몸이 무력하여 더이상 죄의 노예로서 행하지 않기 위함이라"
"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는 산 사람으로 여기십시요"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은 그분과 함께 죽었고 그분 안에서 죽었음을 여겨야 한다.
우리는 깨어서 지속적으로 여길 때 우리의 체험에서 죄를 이기며 마귀를 이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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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인가?)

만일 당신이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담에게 속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다.

당신은 거듭나는 것 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이라면 거듭나는 것 외에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해서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께는 오직 한 종류의 자녀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를 믿음으로 그분의
구속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것 외에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스스로 태어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인해 거듭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으며 아들의 영은 아바 아버지라 외칩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오직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는 사람만이, 아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정욕으로 부패된데서 벗어나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끌어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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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인가?)

이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의문 중의 하나이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 사람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게 되고, 죄를 자백할 필요도,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필요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성경에서 말한 은혜의 복음은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원수 되었던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상고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인간 사회의 이론에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한다(서문).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 이는 만일 창조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소나 양이나 개나 말도 하나님에 의해 피조되었으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며 천사도, 이스라엘 사람도, 아담도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은 결단코 이 네 종류의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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