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M 1

빌립보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다.

빌1:20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확대되게 하려 하나니"
빌1:21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 두 구절이 빌립보서 전체의 기본 사상을 대표한다.

우리가 매일매일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리스도가 확대되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일상생활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과 함께 그리스도를 전파했고
다른 사람들은 유대교와 함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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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7

계시록 19:11 "주님은 백마를 타실 것이며, 희고 순수한 세마포를 입은 하늘에 있는 군사들이 백마를 타신 그분을 따를 것이다"

<신부>
전쟁에 참가하려고 주님을 따르는 군대들이 "빛나고 순수한 고운 세마포"를 입었는데, 신부의 예복이 원수를 대항하여 싸우는 군대로서 입는 제복이기도 함을 가리킨다.

<전사>
전신갑주는 개별적으로 입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단체적인 몸으로서만이 입을 수 있다.

전신갑주를 입는 것은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써이다.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서 말씀의 죽이는 능력이 내적인 대적을 살륙한다.
우리의 자아가 가장 몹쓸 원수이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는 그저 많은 이론들만 가져서는 안 되며, 이론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을 가져야 한다.

기도로 말씀 읽기는 모든 소극적인 요소들을 죽이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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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6

어떤 사람이 주로 다리나 발목이나 발이 강하기 때문에 똑바로 설수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발로 서지만, 사실상 우리로 하여금 곧게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머리이다.
만일 어떤 사람의 머리가 잘린다면 그의 몸은 붕괴될 것이다.

온 우주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아래 있다.
우주적인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몸"을 필요로 한다.
이 몸이 바로 교회이다.

만물 위의 머리이신 바로 그 그리스도가 우리 안으로 거처를 만들고 계신다.
우리 마음은 축전지(battery)이며, 그 중심 안으로 하늘에 속한 전기를 전달하심으로 충전된다.
그럴 때 마치 피가 심장에서부터 신체 전체에 걸쳐 순환되듯이, 우리 마음 안으로 영적으로 전달된 그리스도가 우리 내적 존재의 각 부분 안으로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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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5

결혼하는 날 신랑은 신부의 능력보다 그 아름다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교회는 응당 아름다워야 하며 또한 티들과 주름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참된 아름다움은 인성을 통한 신성한 속성들의 표현이다.
즉 우리의 유일한 아름다움은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것이요, 우리 속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비추어 내는 것이다.
우주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이 표현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우리로부터 빛을 내는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인성 구석구석에 신성한 빛깔과, 신성한 모습과, 신성한 향기와, 신성한 본성과, 신성한 성품, 등의 표현이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 이 어떠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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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4

하나님은 사람이 영 안에서 살고 행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특별히 영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영은 죽은 상태가 되었고, 사람은 공허함을 따라 살기 시작했다.

우리 모든 거듭난 믿는이들은 새롭게 하는 요소인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내주하신다.
이 새롭게 하는 영이 우리 생각 안으로 확장될 때 우리는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될 수 있으며, 그럴 때 계속 우리 감정과 의지도 새롭게 한다.

새 사람은 필히 생각의 영 안에서 행함으로 자라고, 생활해야 하며, 또한 날마다 새로와 져야 한다.

교회생활의 비결은 "생각의 영" 이다.
우리가 생각의 영을 따라 산다면, 신성한 성품이 우리 미덕을 통해 표현된다.
이 미덕에는 그리스도의 성품과, 맛과, 달콤한 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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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3

교회생활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문제이다.

우리가 옛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때마다 우리는 자연히 속에서 어두워짐과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허망해짐을 느낄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는 절연체 때문에 하늘에 속한 전기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이전의 생활방식을 고집한다면 마침내 감각이 굳어지고, 우리 속에 어떤 비췸이나 밝음을 감지할 수 없다.

교회생활은 옳고 그름의 표준보다 훨씬높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른 생활이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사셨던 방식이 곧 오늘날 새사람이 살아야 하는 방식이다.
늘 예수는 하나님의 의와 거룩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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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2

몸은 교리의 가르침을 통해 온전케 되지 않는다.
바울은 신학교에 다녀서 온전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극히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유대교 안에서 교회를 핍박했었다.

다메섹에서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말하면서 주의 이름을 불렀다.
사울이 자신을 주님께 열고 그분을 불렀기 때문에 신성한 충만을 가진 주님이 그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바울은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신성한 충만으로 흠뻑 적셔짐으로써 그러한 은사가 되었다.

바울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고 성도들을 먹이는 사역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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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1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네 가지 것들
*우상숭배 *음행 *분열 *그리스도의 신격(성육신) 부인

바울은 교리에 관한한 관대했지만 우상숭배 음행 분열적인 것에 관해서 매우 엄격했다.
우리도 역시 반드시 엄격해야 한다.

마침내 형제회는 교리적인 지식에 의해 덫에 걸렸으며 거듭거듭 분열되었다.
교리에 관해 논쟁하거나, 성경해석에는 주의하지만,
그 영이나 살아계신 주 예수는 소홀히하다니 얼마나 가련한가!

주님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이고 경건한 사람을 얻으시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분 자신으로 충만되고 흠뻑 적셔진,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가진 새사람인 교회를 갖기를 갈망하신다!

시간은 짧고 그분의 오심은 가깝다!
회복은 유일한 것이며 지극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나는 참으로 신부는 주의 회복 안에서 예비되고 있다고 믿는다.

오, 부디 우리 모두는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일에 연관되어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알기 바란다.
오늘날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주의 회복안에 그분의 움직임 안에 있으며,계속 행진하고 있다.

주님이 오실 때 감람산 위에 그분의 발을 두실 때 그곳에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새 예루살렘 교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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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90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한다.

만일 누가 와서 성육신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믿음을 위해! 진리를 위해!힘써 싸워야 한다.
발 씻는 의식과 같은 것들(교리들)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은 그저 교리를 배운다고 온전케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먹여짐을 통해 온전케 된다.

교리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생명 안의 성장에 의한 것뿐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교리나 성경 지식에 있지 않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생명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자라서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되어 그리스도의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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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M 89

성장은 주로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먹임으로써 이뤄진다.

날마다 나의 아내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나에게 제공한다.
이런 까닭에 나는 강하고 건강하며 힘이 넘친다.
내게는 아내가 나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교회생활 안에서도 동일하다.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요리되고" 과정을 거친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다른 사람들을 먹여야 한다.

오직! 성장에 의해서만이 우리는 더이상 가르침의 바람에 요동하는 어린아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합당한 영양 공급 참된성장!
우리는 결코 교리적은 기준에따라 다른이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려야 하며 그리스도를 공급해야 한다.
이것이 회복안에 있는 주의길이다.

회복안의 필요는 교리가 아니라 참된 성장으로 이끄는 합당한 영양 공급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경륜안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사탄이 간교하게 교리를 사용하는것을 경계해야한다.
우리는 양육과 영양공급과 성장을 주목해야한다.
이것이 오늘날 주의 회복안에서의 필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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