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M 41

아브라함이 롯과 문제가 생겼을 때 아브라함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 가서 실패함으로 배운 공과였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받은 훈련의 결과 자신의 장래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고,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배웠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었노니"

아브라함과 분리된 후에 롯은 계속 패배했다(창13:12).
첫 번째 패배는 소돔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아브라함을 떠난 것이다.
두 번째 패배는 소돔 성안에 들어가서 정착한 것이다.
세 번째 패배는 대적의 손에 붙잡혀 포로가 된 것이다. 소돔 왕은 그를 도울 수 없었다.

아브라함의 담대한 결정은,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이 그를 위해 중보 기도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14장에서 멜기세덱은 롯과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전쟁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실패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아래 있다는 기본공과를 배웠다.
그래서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롯은 구출된 후에도 아브라함에게 감사했다든지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다.
그는 다시 소돔으로 되돌아갔다.
그의 사로잡힘은 소돔으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경고였지만 그는 구출된 후에도 여전히 되돌아갔다.

롯은 패배했지만 아브라함은 승리했다.
차이가 무엇일까?
아브라함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었다.

우리의 멜기세덱이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계속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덮고 보호하신다.(히7:25).

우리는 롯과 같이 패배하지 말고 아브라함같이 승리해야 한다.
승리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의 주재라는 기본 공과를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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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40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의 땅! 처음으로 단을 쌓고 장막을 쳤던 곳 곧 높은 땅 거기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근(생계의 문제)으로 인하여 남쪽으로 여행했는데 그것은 하향길(애굽)을 걸었다는 뜻이다.

기근이 올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오직 위가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
이러한 시험이 왔을 때 아브라함은 "여보 우리 기도합시다" 기도하기를 잊었고,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목숨을 위해 아내를 팔아 넘기고 그 대가로 가축과 소와 노예를 받았다.

아브라함의 실패의 체험이 우리의 체험과 일치한다.
하나님의 체험의 높은 수준에 이르기는 쉬워도 거기에 머물기는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우리가 아내를 팔고 있을 지라도 아내를 보존하시고 부요케 하시고, 그분의 장소로 되돌려 보내실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아브라함은 처음 시작으로, 제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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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39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강을 건너 긴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로 갈바를 알지 못했으며, 지도 또한 없었다.
그의 지도는 산 인격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모레에 도착했을 때 그는 첫번째 제단을 쌓았다.
제단을 쌓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떠함과 모든 소유를 제단위에 놓는 것이다.

모레에서 제단을 쌓은 후 그 땅을 통과하여 벧엘과 아이 사이에 두번째 제단을 쌓았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에서 세번째 제단을 쌓았다.
바벨에서 사람들은 먼저 성을 쌓았고 그 다음에 탑을 세웠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먼저 제단을 쌓았고 그 다음에 장막을 세웠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었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야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활을 위한 장막을 쳤다.

아브라함의 장막(하나님의 임재가 있는)은 우주 안에서 최종 성막이 될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다.

성경은 장막으로 끝난다.
새 예루살렘은 우주 안에서 최종적인 장막이요 최종적인 성막이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출애굽기에서 성장하고 수확은 계시록 21장에 있다.
원칙적으로 아브라함의 장막과 최종적인 장막인 새 예루살렘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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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38

아브라함은 부친이 죽을 때까지 하란에 거했다(11:32).
그 후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11:32-12:3, 행 7:4下).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라함의 지체함은 두 죽음, 곧 우르에서의 형의 죽음과 하란에서의 부친의 죽음을 야기했다.
아브라함은 두 단계를 거쳤으며, 각 단계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 의해 수행되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강을 건넌 후에 세겜에 이를 때까지 남쪽으로 여행하며 그 땅을 통과했다.
상수리나무가 있었던 모레는 세겜에 있었다.
상수리나무는 강하고 단단한 나무이며, 태양의 열을 피하는 그늘을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는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겜인 교회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임재를 소유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땅의 약속을 받는다.

우리는 주님께 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주님과 친밀한 교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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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37

갈대아는 메소보다미아라는 땅에 있었다.
갈대아는 히브리어로 [귀신의] 를 뜻한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다른 신 즉 우상을 숭배했으며 우상들 뒤에는 귀신들이 있었다.
지도를 보면 메소보다미아 땅은 유브라데(페라스)와 티그리스(힛데겔) 라는 두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거처가 귀신이 가득한 곳이었을 뿐 아니라,
두 개의 큰 강에 의해 차단된 곳이었음을 뜻한다.
그의 배경이 이처럼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나올 수 있도록 그에게 나타나셨다.

우리는 모두 갈대아에 있었다.
그러나 영광의 하나님은 큰 강에 의해 차단된 귀신의 땅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나타나셨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최소한 한 번 그들의 깊은 속에서부터 살아계신 영에 의한 예수님의 말씀하심을 직접 들었다!
그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의미한다.
큰 민족은 하나님을 대표하기 위해 다스리는 문제이고, 축복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형상의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고후 3:18).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에 복음에서는 다스림이 먼저이고 형상이 나중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땅의 모든 족속과 모든 민족의 축복이 될 것을 약속하셨다 (12:3).
하나님은 그분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에게서 아브라함으로 돌이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서 모든 족속에게로 다시 돌이키셨다 (갈3:14).
이 역방향 전환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구원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창12:2).
큰 민족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 신약 시대의 교회, 장래의 천년왕국, 영원 안의 새 하늘과 새 땅을 포함한다.
이 땅에서 주 예수의 이름 외에 아브라함의 이름만큼 창대케 된 이름은 없다. 그는 큰 민족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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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36


성경에서 이름이 바뀌는 것은 언제나 생명이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옛 생명을 잘라 내 버리는 것은 할례로 상징되었다.
아브라함의 할례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바꾸신 것과 동시에 일어났다.
외적으로 그의 이름이 바뀌었으며
내적으로는 그의 기질과 본성과 생명이 처리를 받았다.

아브라함의 천연적인 생명의 능력이 잘려나간 후
"생명의 때"에 이삭이 출생했다.
이것은 이삭이 천연적인 능력으로 산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처리된 생명으로부터 산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을 때 야곱은 절기 시작했다.
그의 넙적다리를 치심으로 그날을 기점으로하여 그의 빼앗는 짓은 끝이 났다.
그의 여생을 통해 야곱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그의 빼앗는 손은 바로를 축복하는 손이 되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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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35

영원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땅에서 보낸 우리의 날들을 회상할 것이며 그때의 추억은 달콤하고 누림 있고 의미심장할 것이다.

크신 하나님은 뱀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뱀이 망쳐놓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된 씨로서 이 땅에 오셨다. 사탄이 방해했어도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막을 수 없다.
사탄의 방해는 오히려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나타낼 뿐이다.

아브라함은 부패한 땅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들이 없었다.
그가 늙었을 때에도 여전히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엘리에셀을 그의 후사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에셀을 거절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의 육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거절하셨다.
정한 때가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 사라에게 오셨고, 이삭이 출생했다.
하나님은 이삭만 인정하셨다.

믿는이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전환은 거듭남으로 시작한다(요 3:3, 5).
전환은 할례의 체험에 의해 성취된다(골 2:11, 갈 5:24).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례를 주고 계시며, 이 할례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우리는 변화의 과정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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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34

사람의 첫번째 타락은 영을 소홀히 했다(아담 하와).
두번째 타락은 혼에 의해 행동함(가인)
세번째 타락은 사람들이 온통 육을 따라 살고 행함으로 홍수로 멸하셨다.
네번째 타락은 바벨탑을 쌓아 극도로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했다.

하나님의 건축은 돌로 되어 있고,결국 새 예루살렘은 보석들로 건축될 것이다.
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고,
벽돌은 인간의 노력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다.

오용된 흙(인류)으로 인간의 노력이 만든 벽돌,건축은 바로 사람이 만든 하나님 없는 생활을 건축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흙을 일구어 그 안에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생명의 씨는 그리스도로 자라서 경건하고 생명이 충만한 거룩한 성을 건축하고 있다!

바벨에 건축된 성은 하나님이 없었으며, 생명이 없었다.
전세계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고 생명 없는 성을 건축하기 위해 흙으로 벽돌을 굽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조직들은 흙을 벽돌로 만들어 하나님 없고 생명 없는 바벨을 건축하고 있다.

사람의 네 번째 타락의 결과로 인류는 언어가 혼잡해졌다(7, 9절).
바벨에서 언어는 혼돈되었다.
이것은 저주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한 생각으로 말해야 한다 (롬15:5-6).
우리는 오직 한 생각과 한 입이 있다.
이것은 바벨을 뒤집는 것이다.

저주의 결과는 항상 혼돈을 낳는다.
교회 안에서 다른 생각들과 의견들이 있다면 그것은 저주가 임했다는 표시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자마다 저주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영원한 생명의 축복은 하나 안에 있다(시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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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 33

민수기에 20세 이상 50세 아래인 사람들이 군인이었다.
이들은 전투를 할 수 있는 강한 자들이며 투사들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이기는 자들을 통해 온다.
이기는 자들은 악한 자를 정복하고, 세상을 이기고,길을 예비하여 주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다.

우리는 왕의 직분을 위해 훈련받아야 한다.
왕의 직분은 영 안에서 살며, 영 안에서 행하며, 천연적인 생명을 처리하며,항상 부활 안에 머물러야 한다.

영 안에 부활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된 존귀함을 가질 것이며 가장 위엄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왕국 안에서 통치하는 것은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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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M-32

노아의 후손은 날이 갈수록 인구가 증가했다.
그 결과 분열이 일어났다.
부활 안에서 새로 시작할 때에는 온전한 하나였다. 그들이 한 분 하나님을 경배했을 때 하나였다. 그러나 국가별로 언어별로 나누어졌을 때 분열이 일어났다.
오늘날도 우리가 유일한 한 하나님을 경배할 때 하나를 유지할 수 있다(엡4:6).

노아와 그의 가족은 유일한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였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분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분열될 것이다.

사람들은 왜 분열되는가?
창세기 10장 31절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나누어지는 네 가지 요인을 볼 수 있다.
1)가족에 따라서,
2) 언어에 따라서,
3) 사는 장소에 따라서,
4) 민족에 따라서
나누어졌다.
기독교 안에서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과 같은 종파들이 열국이요 분열이다.

우리의 이름을 ‘지방 교회’라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달(moon)에는 어떤 이름이 없다. 그것은 그저 달이다.
이처럼 교회는 단지 교회이다.
‘지방 교회’라는 용어는 우리의 이름이 아니다.

바벨은 저주받은 노선에 있는 함으로부터 나왔다(10:6, 8).
바벨의 건축자인 구스는 함의 아들이었고, 구스의 아들 니므롯은 바벨 왕국의 첫 왕이 되었다.
함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그의 반역으로 인해 저주받았다.

성경에 따르면 니므롯은 아기를 안고 있는 마돈나(Madonna)를 발명하였다.
마돈나는 니므롯의 어머니이자 그의 아내였다. 마돈나 상은 인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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